일본생활수기/일본에서 살면서

[스크랩] 일본에서 살면서 (8) - 피서이야기( 고급별장에서 도시락 먹다 )

은퇴한 교수 농부의 일상과 추억 2007. 12. 27. 22:33
"식사를 예약하고 가라." 그리고 "가면, 여러가지 식당이 있으니 먹고 싶은거 먹고 영수증만 가지고 오면 회사 경비로 처리해 주겠다." 별장을 빌려준 친척 형이 티켓을 보내면서 전화로 한 말이다. 하지만, 그 정도야 가서 해도 되겠지 하는 안이한 생각이 저녁도 못 먹게 만들 줄이야. 한국에서야 콘도가면 언제나 사먹을 수 있고, 또 재료 사다가 해먹을 수도 있었으니까.

무시히 별장에 도착 했다. 카운터에서 예약 번호를 말하고,방키를 받아 들때 또 직원이 물었다. "저녁은 뭘로 하시겠습니까?" "아직 잘 모르겠으니 좀 있다 전화하겠다." 고 말하고 방으로 왔다. 50평 정도되는 별장의 시설은 나 같은 촌 놈으로는 좀 버거운 장소 임에는 틀림없지만, 여기까지 왔으니 함 부딪혀 보자고 다짐하고, 남들이 어떻게 하는지를 돌아보기로 했다. 뭐 우리나라의 콘도와 별 다를게 없구먼.. ..이것이 처음 내린 결론이다.

"저녁을 예약하고 싶은데요" 카운터에 전화를 했다. "뭘로 하시겠습니까." "일본 요리로 하겠습니다." 그랬는데, 문제는 지금부터다. 굉장히 공손한 말투로 여러 말을 막 해댄다. " 이런 곳의 종업원들은 손님에게 언제나 극 존칭어를 쓴다. 특히 미안하거나 할때는 더더욱...그러니 짧은 일본어 실력으로 알 수가 있나. "난 외국인이라서 존경어를 잘 모르니까 일반 용어로 천천히 설명해 주면 좋겠다."고 한마디 했다.

요지는 오늘 저녁은 일본 식당은 만원이라, 식사를 할 수 없단다. 그러면 중국식당은? 역시도 안 된단다. 지금 저녁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은 불란서 식당 밖에 없단다. 공짜로 먹는 저녁을 안먹기는 아까워서 그러면 블란서 식당이라도 좋다고 했다. 그런데, 직원 왈 "블란서 식당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남자는 자켓을 입어야 합니다" 란다. 피서 가면서 정장 입구 가는 사람이 어딧나. 자뀔은 무슨 자켓. 그런데, 굳히 먹겠다면, 구석 자리를 잡아 줄 수는 있단다. "좀 기다려 달라"고 하자 "지금 예약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여기도 만석이 되면 예약을 못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러니 어떻게. 예약을 할 수 밖에.

문제는 또 있다. 그러면 식사는 뭘로 할 것인가? 나야 프랑스 요리를 먹어 보긴했지만, 그 이름을 어떻게 아나. 그림도 없는데..그러면 식당 직원을 보내겠단다. 알았다고 일단 전화를 끊었다.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

사실 난 프랑스 요리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다가, 남들 다 정장입고, 먹고 있는데 옆에서 머슴처럼 먹는게 영 찜찜하고...식사 비용도 만만찮아서 보통이 1만엔 정도니까 3명이 먹으면 한끼에 27만원, 그 돈내고 눈치보면서 먹느냐 아니면 마느냐! 결국은 "포기하자"로. 마누라도 그렇게 먹는건 싫다고. 다시 전화 했다. "블란서 요리는 가족 중에 좋아 하지 않는 사람이 있어서 안되겠다" 고, 직원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그 때 식당 직원이 메뉴판을 들고 벨을 눌렀다. 취소한 사정 설명을 하고 돌려 보냈는데...

이제 어떡한다. 그런다고 여기는 조리시설이 없어서 해먹을 수도 없구. 나가서 먹어야 하는데, 어둠이 내려가는 처음와보는 외국의 산골에서 뭘 찾아 먹냐? 그것이 문제로다. 일단 나가 보자. 그래도 이렇게 온김에 가족에게 근사하게 저녁을 먹이고 싶은 마음에 자꾸 멀리 가고 있다. 마땅히 갈만한 곳도 없고, 날은 저물고...

헤매는 돌아다니다 슈퍼마켓을 발견한 와이프는 "저기 가서 초밥이나 사가지고 가서 먹읍시다."란다. 이젠 지친 상태에서 방법은 그것 밖에 없다. 평소에도 자주 먹긴 하지만, 너무 비싸서 많이는 못 먹는데, "오늘은 여기서는 먹고 싶은거 마음대로 골라라"고 아들한테 한마디 했다. 서글프라...

맥주랑 초밥이랑, 이것 저것 잔뜩 싣고 들어오긴 했는데, 고급 별장에 시장 비닐 들고 들어가기도 그렇고. 이거 난감하네. 워낙 넓은 숲속에 2층 건물로만 지어진 별장은 미로 찾기인데다가, 손님을 골프카로 데려다 주는데... 할 수 없이 객실로가서 가방을 가지고 와서 무슨 비밀 작전 하듯이 방으로 옮겼다.

밤은 깊어가고, 그래도 굶는 거 보다야. 남들 신경쓰면서 먹는 블란서 요리보다 식구끼리 오붓하게 먹는 스시가 더 나은가? 진작 일본 식당에 예약을 하고 오는건데, 근사하게 일본 요리를 맛보고 싶었는데, 후회는 후회일 뿐. 스시와 함께 먹은 기린 맥주 한캔으로 위안했다.

그리고 노천 온천에서 피로를 풀었다.

긴 하루였다.

하지만, 아직도 이틀이나 남았다.
출처 : 淸道梅田中서울경기同門會
글쓴이 : 한상길(3회-금곡)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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