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일본에서 살면서 (17) - 막걸리 이야기
난 막걸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언제 부터인지는 모르지만, 난 막걸리를 별로 입에 대지 않았다. 그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지금 생각하면 어릴 때 아버지 심부름으로 막걸리를 사러 다녔을 때의 기억 때문이 아닌가 여겨진다. 그럴 때 대개는 막걸리 주전자에 입대고 몇모금 마시고 가지고 가던지, 좀 모자란다 싶으면 물타서 가지고 같다고 하는데, 난 그때도 그렇게 해본적은 없었던 것 같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란 사람은 다 기억이 있게지만 동네의 어느 집에 결혼식이 있다거나 회갑 같은 잔치가 있으면 친구들끼리 모여서 그집에 술이랑, 음식을 얻어먹으러 다녔다. 단자라고 했던가. 그 의미는 정확히 모르지만, 그렇게 불렀던 것 간다. 지금 기억으로도 초등학교 시절때도 막걸리를 함께 주었던 것 같다. "많이 마시지는 마라"라고 막걸리를 주전자에 부어주면 "우리가 마시는게 아니고 형들이 얻어 오라고 했어요"라고 발뺌했던 기억이 있다. 물론 우리끼리 나눠 마셨겠지만. 하지만 그때도 난 막걸리를 마셔본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물론 마셨겠지만.
내가 군대가기 전까지는 대개 막걸리를 마셨던 것 같다. 그런데 어느 날 부턴가 막걸리 대신에 소주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막걸리는 대개 산에 갔다 내려오면서 부침개와 함께 먹는 정도, 아니면 농사일 하다가 배고프고 힘들 때 먹는 농주의 의미로 돌아가 버렸다. 어린 시절 술 도가라면 정말 빵빵한 집이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뜸엔가 이런 기분마져 사라져 버렸다. 나의 술에 대한 기억은 소주가 보편화 되던 그때부터가 아닌가 한다.
그래도 가끔은 막걸리를 마신다. 북한산이나 관악산 또는 서울 근교의 산을 오를때 정상에 가면 언제나 막걸리가 있었다. 그것도 겨울에 가면 살얼음이 동동 떠다니는 막걸리. 땀을 식히면서 정상 부근에서 무우 나물과 함께 마시는 막걸리는 그래도 먹을 만 했었던 것 같다.
지금도 서울에서는 포천 막걸리는 잘 팔리고 있다. 왜 서울 막걸리 보다 이동이나 일동의 막걸리가 더 잘 팔리는지는 모르겠지만. 막걸리의 참 맛은 물맛이라고 하니까, 아마도 그곳의 물이 좋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 한국의 이동 막걸리를 여기서도 볼 수 있다니 정말 신기하다. 물론 진로소주와 참이슬, 경월 소주는 여기서도 슈퍼의 양주코너에서 시바스리갈과 함께 팔린다. 한국 술 집에 가면 먹다 남은 진로 소주 병에 목걸이를 걸어 키핑해놓고 다음에 가서 다시 마시기도 한다. 소주에 김이 빠지면 별 맛이 없지만 아마도 이곳 사람들은 소주에 얼음과 물을 함께 타서 마시는 소위 미주와리의 습관 때문에 그런 것은 잘 모르나 보다.
가끔 한국이 그리울때는 소주를 마신다. 그것도 김치찌게나 아니면 신라면이라도 끓여서. 여기서 팔리는 소주는 아직도 25도짜리이다. 물론 한국 전문 식품점에가면 참이슬도 있긴 하지만. 참이슬 한병에 500엔 정도이니까 4,000원 정도로 팔린다. 슈퍼에서 산다고 생각하지 않고 술집에서 3,000원 주고 먹는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비싼 것이 아니라고 여기면서 어쩌다 마신다.
소주나 막걸리 보다는 맥주나 일본 주(정종)나 일본 소주를 마시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그래도 외국에 있으면 그게 고향을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통로 이기도 하니까. 태국이나 베트남 같은 동남아시아를 여행 할때 가지고 간 종이팩 소주를 숨겨서 먹으면 맛있었던 기억. 그리고 돌아 올 때 남은 소주를 가이드에게 주면 그렇게 도 고마워 했던 의미를 이젠 알 것 같은 생각도 들고...
일본에 와서 지내다 보니 이런 저런 사람을 만나게 되고, 그러다 보니 한국말을 배우고 싶다는 사람들도 만나게 되어, 나도 일본 사람들 몇에게 한국말을 가르치고 있다. 매 주 토요일 오후에 교포의 오피스텔에서 수업을 한다. 수업을 마치고는 언제나 한국 술집에 가서 저녁을 먹는다. 오늘은 주제가 한국 음식이라서 우리 집에서 하기로 했다. 마누라가 별로 솜씨는 없지만 그래도 한국 음식점 보다는 나을 것 같아서. 매운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일본 사람들을 위해서 잡채도 만들고. 부침개(찌짐이)도 붙이고...
그 중 일흔이 되는 교포 한분은 언제나 진로소주를 마신다. 그래서 진로소주도 준비하고. 그랳는데, 일행 중 한명이 이동 막걸리 한명을 사가지고 왔다. 정말 오랫만에 보는 막걸리.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정구지 부침개와 함께 먹는 막걸리는 먹을만 했다. 아마 입맛도 세월따라 여건에 따라 변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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