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생활수기/일본에서 살면서

일본에서 살면서 (15)- 젓가락 이야기

은퇴한 교수 농부의 일상과 추억 2007. 12. 27. 22:44
한국와 일본, 그리고 중국은 아시아에 속하는 지리적 근접성 말고도 여러가지 공통점이 있다. 한자를 사용하는 것을 비롯하여 쌀을 주식으로 하는 점(물론 쌀을 주식으로 하는 나라는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를 비롯해 많이 있지만...), 그리고 젓가락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젓가락을 사용하는 것은 같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사용하는 젓가락은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의 젓가락은 끝이 네모꼴로 되어 있고, 일본 것은 뾰족하다. 이에 비해 중국 것은 둥글다. 이 차이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일반적인 것으로는 우리나라는 김치를 집어 먹을 수 있게 하기 위해 네모로 되어 있고, 중국 것은 면을 잘 먹을 수 있도록 뭉툭하고, 일본 것은 생선을 잘 발라 먹을 수 있도록 뾰쪽하다고 한다. 길이로 따지면 중국은 길고, 일본은 짧고, 한국은 중간 정도랄까.

 

  물론, 중국이나 일본과는 달리 우리는 식사 도구로 젓가락뿐만 아니라 숫가락을 사용하는 차이가 있다. 여기에도 나름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문화적인 배경이 있겠지만. 결국 우리의 젓가락은 세나라의 중간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젓가락 문화가 다른 일상 생활 문화에도 공통적으로 작용 된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일본은 여러 차례, 그리고 이런 저런 기회로 중국도 서너번 다녀온 적이 있었다. 여행을 하면서 나름대로 느낀 것은 중국과 일본의 중간에 우리나라가 위치 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젓가락 끝이나 길이처럼. 

 

  2003년 12월에 후쿠오카 행 비행기를 타고 나가사키에서 이틀을 머물고, 오사카, 나고야를 거쳐 동경을 여행한 적이 있었다. 물론, 단순한 여행 만은 아니었고 이런 저런 발표, 회의 참가 등을 겸한 일정이었다. 일본 남쪽에서 중부 일본에 이르는 긴 여로였다. 250키로 신칸센으로 4-5시간 걸리니까 1000키로가 넘는 길이다. 후쿠오카 공항에서 마중 나온 일본일들은 만나 하카다 역까지, 그리고 그곳에서 나가사키로 열차로 이동했다. 문제는 마중 나온 분들이 열차 시간은 물론이고 점심먹는 시간까지를 정확하게 체크해서 한치의 오차 없이 나가사키까지 가게 되었다.

 

  일정을 마치고 일행 한명과 오사카, 나고야에서 각각 1박을 한 후에 동경으로 가게 되었다. 동경에서는 동경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도카이(東海)대학이라는 곳을 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초청한 사람의 안내를 보고 정말 깜작 놀랐다. 신칸센 동경역에서 내려서 부터 전철을 갈아타고 학교까지 가는 길을 정말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차 시간은 기본이고, 차를 타는 장소, 이동하는 방법 등을 분 단위로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물론 덕분에 찾아가는데는 전혀 어려움이 없었지만. 왠지 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저렇게까지 치밀할 수 있을까. 

 

  이에 비해 중국은 젓가락 모양처럼 길고 두리뭉실 한 것 같다. 내가 한 중국여행은 대부분 패키지 여행이라 자세하게는 잘 모르겠지만, 느낌으로는. 정말 일본과는 다르구나를 실감한 적이 많았다. 예전에 가끔 만났던 중국사람들도 그렇고, 여기에서 만나는 중국 사람들도 그런 것 같다(중국은 잘 모르니까 그냥 느낌만 적고....). 중국을 장기간, 그것도 개인적으로 여행하고 온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 대강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일본 사람은 철두철미 하다고 할까. 지금 내가 실고 있는 주변 도로에 전선 지중화 공사를 하고 있다. 매일 지나다니면서 바라보면 정말 꼼꼼 하다는 것을 실감한다. 공사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내 생각으로는 금방 끝날 일 같은데, 두고 두고 하는 것 같다. 아마도 우리나라 같으면 금방 파엎고, 다시 뭍을 것 같은데...공사하는 동안 사람이 다니는 길에는 언제나 양쪽에서 2사람이 길을 안내한다. 그리고 항상 "죄송하다"고 말하면서. 그런데, 해 놓은 것을 보면 정말 꼼꼼하다는 것을 느낄 수는 있다.

 

  일본 사람들은 여행을 좋아한다. 물론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야 별로 없겠지만...특히 좋아하는 것 같다. 빠듯한 살림에도 언제나 여행 계획을 세운다. 문제는 그 여행 계획이 젓가락 끝처럼 뾰족하다는 것이다. 자기가 사는 지방을 떠나 좀 먼 곳을 여행하는 데는 대개 2-3개월 전부터 계획을 세운다. 물론 그런 계획을 돕는 여행사나 여행 책자도 많이 있지만...

 

  가끔 주말이나 휴일에 집에 있기 지루하면 마누라 태우고 동해안이나 한번 다녀올까하고 자동차 몰고 다니던 나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여행지의 인터넷 사이트를 가보면 그런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그래서 일본에 있는 주재원이나 유학생, 그리고 그 가족들은 한국에 한번 다녀오고 싶으면 역으로 2-3일 전에 비행기 티켓을 끊는다. 그러면 싸게 다녀올 수 있는 티켓을 확보 할 수 있다. 물론, 연휴나 연말, 방학에는 어림도 없지만....

 

  일본에서 생활한지 몇 달만에 나도 일본 젓가락처럼 뾰족하게 되가는지 모르겠다. 친구 가족이 내년 1월에 한번 다니러 오는데 벌써 항공권을 구입하도록 했다. 이제 다음으로 함께 다닐 여행지와 교통편, 요금, 그리고 시간을 정확하게 한번 체크해 봐야 겠다.

 

  오늘도 국을 젓가락으로 먹었다. 국그릇을 손에 들고 입가까이 갖다대고 후루룩 마신다. 한국으로 돌아갈땐 일본 젓가락을 좀 가지고 가여 할 것 같다. 그래야 생선을 잘 발라 먹을 수 있을 것 같으니까.     

 

<2007,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