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서 이야기(3) - 남자 온천에 왠 아줌마
"이제 뭐 하지" 저녁을 한끼 때우고 나니 이제 할 일이 없다.
아마도 이게 가족 여행의 단점이 아닐까. 그것도 사춘기 아들을 데리고 여행 하는 것이라면....
워낙 여행을 좋아해서, 얘들이 어릴 때는 많은 곳을 데리고 다녔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가족이 함께 여행을 갈려면 얘들한테 보고하고, 허락을 맡아야 했다. "이번 여행은 어디에 어떻게 가서 뭘 보고, 뭘 먹고, 뭘 할 예정이며, 언제 돌아 온다". 그러면, 얘들이 "그럼 좋다. 가자" 아니면 "별로다. 그냥 가지 않으면 안될까" 로 반응한다. 하긴 언제 부턴가는 그냥 떼 놓고 가게 되었지만...
물론, 부부의 여행도 1박 2일이 적당하다는게 나의 지론이긴 하지만....
일본에 와서 둘만 달랑 올 수가 없어 데리고는 왔다. 그런데 영 반응이 신통찮다. 노트북 컴퓨터에 영화CD, 만화책 까지 챙겨왔는데도.
여자 얘들이라면, 수다라도 떨 텐데. 그냥 방하나에 가서 컴퓨터랑 논다. 아마도 저게 생활인가 보다.
슈퍼에서 사온 스시랑, 참치랑에다 맥주 한잔을 하고 나니 이젠 더 이상 할 일이 없다. 이제 나머지는 딱 한가지 온천 가는일 뿐이다. 이 별장에는 노천온천과 스파가 있었다. 온천은 비용을 받지 않지만, 스파는 요금을 받는다. 수영복도 없으니 당연히 스파는 포기하고, 온천에만 가기로 했다. 이를 대비해서 낮에 온천에 가는 사람이 어떻게 가는지 봐두었으니까. "게다를 신고 방 키만 보여주고 들어가면 된다"고 아내가 말했다. "그래도 수건은 챙겨 가야지". "다 준다니까" 결국은 수건 하나를 접어서 들고 게다 신고 온천으로 향했다.
방키로 체크하니 종업원이 뭐라고 한참을 지껄이더니 온천만 하겠다고 하자 알았다며, 수건 뭉치를 준다. 아뿔사. 수건은 가지고 오지 않아도 되는데. 대개 온천에서는 수건은 본인이 지참하고, 아니면 판매를 하는데, 역시 좋은 별장은 다르구먼...
수건 한장은 보통 수건, 그리고 한장은 몸을 가리는 큰 수건. 이걸 다 어디 쓰라고. 나야 보통 온천가면 수건 한장 달랑 가지고 가서 온천 끝나고, 노천에서 그 수건으로 닦으면서 말리면 그만인데...
큰 수건은 대개 TV프로그램에서 목욕 장면을 찍을 때나 쓰는거지 그냥은 욕탕에 가지고 들어 갈 수 없는 것인데. 큰 수건은 락카에 두고 작은 수건 한장 달랑 들고 유유히 목욕탕에 들어가는데, 왠걸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든다. 기지개를 펴고 있는 앞에 종업원 아줌마가 멍히 처다보고 있는게 아닌가. 이를 줄 알았으면 큰 수건 두르고 오는건데...
종종 욕탕안에서 들어온 여 종업원이 남자 손님들과 담소하는 것은 본적이 있지만, 내앞에 있는 것은 처음이라 많이 당황 했다.... 그래도 비오는 밤, 조용한 노천 온천에서 머리에 수건 뒤집어 쓰고 온천 하는 맛은 일품이다. "야, 내가 온천 들어가는데 종업원 아줌마가 빤히 쳐다보더라"고 마누라에게 했더니. 마누라 왈 "세상에서 제일 좋은 여자 직업이다"며 부러워 한다.
20도 이하의 서늘한 고원의 밤은 깊어 갔다.
<2007,8,2>